별들의 전쟁, 그 시작과 끝
MLS는 미국 축구의 상징이지만, 그 이전에 모든 것을 시작하고 끝냈던 전설적인 리그가
있었습니다.
바로 북미 사커 리그(North American Soccer League, NASL)입니다.
1970년대, 펠레, 베켄바워, 요한 크루이프 등 세계 최고 스타들이 미국 땅을 밟으며 화려한
축구의 시대를 열었지만,그 영광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이 글은 NASL의 폭발적인 인기와 갑작스러운 붕괴, 그리고 그 실패가 어떻게
오늘날 MLS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는지 추적합니다.
2. NASL의 화려한 부상
2-1. 모든 것을 바꾼 '축구 황제' 펠레의 등장
1975년, 뉴욕 코스모스가 '축구 황제' 펠레를 영입한 사건은 미국 축구 역사를 바꾼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합류는 즉각적인 '펠레 효과'를 낳았습니다.
코스모스의 관중 수는 3배로 급증했고 TV 시청률은 폭발했으며, 미국 전역에 축구 붐을 일으켰습니다.
펠레의 존재는 리그에 신뢰를 부여하며 다른 세계적인 스타들이 미국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습니다.
2-2. 은하수처럼 빛나던 슈퍼스타 군단
펠레의 성공 이후, NASL은 전설들의 경연장이 되었습니다.
뉴욕 코스모스는 프란츠 베켄바워,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를 영입해 '은하 군단'을 만들었고,
다른 팀들도 요한 크루이프, 조지 베스트, 게르트 뮐러 같은 슈퍼스타들을 영입하며 리그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NASL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유명인사들이 찾는 화려한 문화 현상이었습니다.
<< 영입선수 및 소속팀 >>
선수명 | 국적 | 주요 이전 클럽 | NASL 소속팀 | NASL 활동 기간 |
펠레 (Pelé) | 브라질 | 산투스 FC | 뉴욕 코스모스 | 1975–1977 |
프란츠 베켄바워 | 서독 | 바이에른 뮌헨 | 뉴욕 코스모스 | 1977–1980, 1983 |
요한 크루이프 | 네덜란드 | FC 바르셀로나 | 로스앤젤레스 아즈텍스, 워싱턴 디플로매츠 | 1979–1980 |
조지 베스트 | 북아일랜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로스앤젤레스 아즈텍스, 포트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 산호세 어스퀘이크스 | 1976–1981 |
조르지오 키날리아 | 이탈리아 | SS 라치오 | 뉴욕 코스모스 | 1976–1983 |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 브라질 | 산투스 FC | 뉴욕 코스모스, 캘리포니아 서프 | 1977–1982 |
에우제비우 | 포르투갈 | SL 벤피카 | 보스턴 미뉴트멘, 토론토 메트로스-크로아티아, 라스베이거스 퀵실버스 | 1975–1977 |
게르트 뮐러 | 서독 | 바이에른 뮌헨 | 포트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 | 1979–1981 |
보비 무어 | 잉글랜드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 샌안토니오 썬더, 시애틀 사운더스 | 1976, 1978 |
제프 허스트 | 잉글랜드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 시애틀 사운더스 | 1976 |
3. 꿈의 붕괴: 실패의 해부학
3-1. 독이 된 무분별한 확장
NASL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무분별한 확장이었습니다. 리그는 단기적인 가입비 수익에 눈이 멀어 18개 팀에서
24개 팀으로 급격히 몸집을 불렸습니다. 이는 준비되지 않은 시장과 재정적으로 부실한 구단주들을 유입시키는
결과를 낳았고,리그 전체의 안정성을 뿌리부터 흔들었습니다.
3-2. 감당할 수 없었던 연봉 전쟁
모든 팀이 '제2의 코스모스'가 되기 위해 경쟁적으로 스타 선수 영입에 뛰어들면서 선수 연봉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당시 구단들은 예산의 70% 이상을 선수 연봉에 쏟아부었고, 1980년에는 리그의 모든 팀이 적자를
기록하는 재앙적인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 NASL은 1985년 시즌 운영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연도 | 주요 사건 | 리그 팀 수 |
1977 | 펠레 은퇴. 리그 축소 및 안정화 전략 계획이 부결됨. | 18 |
1978 | 6개 신생팀이 합류하며 리그가 최대 규모로 확장됨. | 24 |
1979 | 선수 노조와의 분쟁 발생. | 24 |
1980 | 리그 전체가 약 3,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 ABC와의 TV 계약이 대폭 축소됨. 시즌 후 3개 팀 해체. | 24 → 21 |
1981 | 다시 한번 리그 전체가 약 3,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 시즌 후 7개 팀이 추가로 해체됨. | 21 → 14 |
1982 | 필 우스넘 커미셔너 해임. | 14 |
1983 | 미국이 1986년 월드컵 유치에 실패함. | 12 |
1984 | 9개 팀으로 마지막 시즌을 치름. 시카고 스팅이 마지막 챔피언이 됨. | 9 |
1985 | 3월 28일, 리그 운영 공식 중단. | 0 |
4. 결론: 실패가 남긴 위대한 유산
NASL은 사업적으로는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그들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미국 축구의 가장 귀중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MLS는 NASL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단일 구단주 시스템 ▲샐러리캡 도입 ▲신중한 확장 정책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결국 NASL의 화려한 죽음은 오늘날 미국 프로 축구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했던 값비싼 예방주사였던
셈입니다.
♣. 질문과 답변
질문: NASL은 왜 그렇게 많은 슈퍼스타를 보유하고도 실패했나요?
답변: 가장 큰 이유는 재정 관리 실패입니다. 리그는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팀을 늘렸고, 모든 구단이 뉴욕 코스모스처럼 슈퍼스타 영입에 막대한 돈을 쓰면서 재정 구조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는 지속 불가능한 모델이었습니다.
질문: NASL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무엇인가요?
답변: MLS의 성공을 위한 '실패 교과서'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NASL의 모든 실패 원인은 MLS의 핵심 운영 정책(샐러리캡, 단일 구단주 시스템 등)을 만드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미국 대중에게 축구를 처음으로 널리 알리고 유소년 축구 붐을 일으켜 1994년 월드컵 유치와 MLS 창설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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